어렸을 때 한 번쯤은 다들 상상해본 적 있을 것이다.
나중에 내가 힘들 때, 백마 탄 왕자님이나 공주님이
나를 구하러 와주겠지?
그럼 나는 거기에 반해 서로 사랑하게 될거야
그리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겠지!
라는 판타지소설같은 이야기.
어렸을 때야 창의성을 위해서라도
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게 좋다지만,
나 스스로를 책임져야 하는 어른이 되서도
“누군가가 아직 나를 구해주러 오지 않았어!”
라는 희망고문에 사로잡히고 말게 된다면
나락에 빠지는 지름길이 된다.
냉철하게 말해서, 왜 너를 구해줘야하는가?
그 백마 타신 분들께서 왜?
나는 소중하고 귀한 존재니까. 그건 맞지만
반대로 그 사람들도 소중하고 귀한 존재란 말이다.
굳이 너를 구해줄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.
그리고 착각하는 게 있는데,
살면서 이 세상에서 내가 주인공이라는
망상에 빠져 사는 것이다.
인생에서의 내가 주인공은 맞지만,
그 인간 개개인 모두가 주인공이므로,
나는 결국 주인공1에 지나지 않는다.
일명 주인공 버프가 일어날 거라고 기대하면
안된다는 얘기다.
나를 구해줄 수 있는 사람은 가족도 힘들다.
천륜을 저버릴 수 있는 요새 세상인데,
마냥 가족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복받은 거고.
결론은, 나를 구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나라는 거다.
내가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,
바뀌는 게 아무것도 없다.
내 무언가때문에 힘들어서 떠나간 사람은,
다른 사람이라고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줄 수 있는
사람은 정말 찾기 힘들 것이다.
대부분은 똑같은 이유때문에 떠나간다.
내 스스로가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.
그러려면 내 자신에 대한 객관화도 필요하다.
내 장점, 내 단점을 줄줄이 써보면서
내 단점에 대해 반대로 생각해보는거다.
이런 단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나에게 이렇게 행동한다면
나는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가.
내 입장에서 보자면 내 무기력증을 있는 그대로
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는 거다.
사랑하는 사람이면 다 받아줄 수 있을까?
처음엔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나중엔 퍼도퍼도
깨진 밑독에 물 붓는 항아리처럼 채워지지 않는
내 컨디션에 결국 지쳐 나가떨어질 것이다.
무기력증은 정말 치명적인 단점이다.
내 삶을 갉아먹고 내 주변 사람과 단절시킨다.
내가 누군가를 만나면 달라질 수 있어,
결혼하면 달라질 수 있어 같은
다른 사람에게 의존해서 달라지려고 하는 건
굉장히 위험한 발상인 거다.
그 사람이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고
그 사람이 없어지면 난 더 나락으로 빠질 거라는 거니까.

나를 좌지우지하려는 사람이 없어도
나 스스로 온전히 빛날 수 있는.
그리고 나는 내가 책임져야 하는 거다.
다른 사람에게 나를 떠넘기지 말아라.
내 자신에게서 행복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.
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구걸하지 말라
그래서 오늘도 열심히 나는 분투중이다.
움직일 수 없어 아무것도 못하느니
비록 남들이 봤을 땐 아무것도 아닌 일이어도
나한테 있어서 오늘도 해냈다는 느낌이 들 수 있게끔
정말 억지로라도 노력하고 있다.
물론 이 노력은 하찮아보일 수 있겠지만
내 스스로 인정하고 있기에 괜찮다.
나는 오늘도 노력하고 있어. 나를 위해서.
'무기력증 벗어나기' 카테고리의 다른 글
소비하는 삶과 생산하는 삶 (0) | 2023.01.27 |
---|---|
맥시멀리스트는 피곤해 (2) | 2023.01.26 |
자살과 죽고 싶다는 엄연히 다르다 (2) | 2023.01.25 |
우울증과 무기력증은 관리해야하는 평생동반자 (0) | 2023.01.24 |
잿빛 세상에서 살고 있는 나로부터 (0) | 2023.01.23 |
댓글